산림조합뉴스 266호
홈가드닝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관엽식물로 홍콩야자가 빠 지지 않는다. 홍콩야자는 사계절 초록 잎을 볼 수 있는 상록 성 식물로, 관리도 까다롭지 않은 편이다. 집이나 사무실, 상 업 공간 어디에서도 플랜테리어 효과가 크다. 홍콩야자(Schefflera arboricola)는 중국 하이난성에서 자생 하는 두릅나무과 속씨식물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열대 지역, 파푸아뉴기니 등에서 자생하는 품종도 있다. 홍콩야자 는 대체로 키가 크게 자라는 키높이 식물이다. 야생에서는 5~6m 이상까지도 자라며 집에서 별도 관리 없이 키우다 보 면 사람 키보다 크게 자라기도 한다. 사계절 싱그러운 홍콩야자 키우기 글·사진 송현희 『반려식물 인테리어』 저자 일반적인 잎은 개구리 발바닥처럼 생겼으며 보통 7~9장의 작은 잎으로 되어 있다. 이 잎들은 9~20㎝ 길이에 4~10㎝ 너비로 되어 있다. 열매는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여 씨앗을 품은 핵과로, 지름은 약 5㎜이다. 자생지에서 잘 자랄 때 열 매도 볼 수 있지만, 일반적인 홈가드닝에서는 열매를 기대하 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온실처럼 사계절 잘 관리할 수 있 는 환경에서 햇빛과 충분한 물과 영양을 제공한다면 열매를 볼 수도 있다. 2026.04 vol.72376 + 홈가드닝산림문화 무늬홍콩야자라 불리는 홍콩야자의 무늬종은 잎의 노란색 무늬가 특징이다. 주로 진한 초록색의 홍콩 야자와 달리 잎에 있는 노란색은 새로운 매력이 있다. 상업 공간이나 좁은 곳에 식물 인테리어를 할 때 초록색 잎의 홍콩야자와 함께 두면 색다르다. 무늬홍콩야자 홍콩야자는 번식해서 키우는 즐거움도 크다. 잎을 잘라 잎꽂이를 할 수 있지만 성공 확률은 낮다. 하지 만 줄기의 일정 부위를 꺾어서 개체수를 늘리는 꺾꽂이는 어렵지 않다. 꺾꽂이할 때는 잘 자라는 중심 줄기가 아닌, 곁가지를 이용한다. 원래 수형을 유지하면서 아래쪽에 난 줄기를 자르고, 유리병 등에 물 을 채운 후 줄기를 꽂아 하루 정도 두면서 물 올리기를 한다. 이때 뿌리가 없는 홍콩야자는 줄기 면으 로 물을 흡수한다. 이를 다른 화분에 옮겨 심는데 배양토만 이용한다. 심은 후 물은 소량만 주고 모체 옆에 두고 관리한다. 꺾꽂이는 겨울과 한여름을 피하면 좋다. 홍콩야자의 번식 방법: 꺾꽂이 77www.sanrimji.com 유리창을 한 번 통과한 햇빛이 건강한 잎을 유지하고 줄기를 튼튼하게 한다. 25℃ 이상에서 햇빛을 직접 많이 받으면 잎이 타고 손상이 올 수 있다. 실내 창가나 햇빛이 은은하게 드는 거실이 좋다. 야외에서는 여름이나 겨울을 건강하게 나는 게 쉽지 않 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 5℃ 이하에서는 냉해를 입을 수 있다. 화분 표면의 흙이 바싹 말랐을 때 흠뻑 준다. 화분이 적당한 크기일 때는 조금 말려도 큰 상관이 없지만 화분이 작을 경우 물관리에 신경 쓰지 않으면 잎이 마르고 손상이 올 수도 있다. 작은 연질 화분에 심은 홍콩야자를 구매했다면, 일반 분갈이용 흙을 이용해서 분갈이한다. 화분 크기는 기존 화분의 두 배 이상이 좋다. 만약 처음 화분에서 뽑아낸 개체가 두 개라면 따로 분리해서 심는다. 뿌리와 가까운 줄기를 적당히 제거해야 위로 나는 잎을 건강하게 볼 수 있다. 중심 줄기가 위로 너무 높이 자랄 때는 잘라줘야 적절한 수형을 유지할 수 있다. 분갈이 후 흙 위에 알비료를 조금 올려준다. 관엽식물에 사용할 수 있는 알비료를 20~30알 정도 올려두 면 물을 줄 때마다 조금씩 녹아서 줄기와 잎을 건강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홍콩야자 관리 방법 햇빛 장소 물 가지치기 영양 흙과 분갈이 화분이 도착하면 화분과 줄기 일부를 가리고 있는 포장지를 제거한다. 그래야 아래쪽 줄기와 잎의 통풍을 방해하지 않는다. 78 2026.04 vol.723 홍콩야자는 기본적으로 위로 곧게 자라는 식물이다. 성장기에 빛이 부족하거나 빛을 한쪽으로만 받았을 때, 줄기와 잎이 빛 있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이미 위로 많이 자란 홍콩야자가 아닌, 어린 모종이라면 줄기를 조금씩 기울이거 나 시간을 두고 형태를 잡아서 키우는 방법이 좋다. 이때 아래쪽 줄기, 잔잎 등은 조금 제거하면서 위쪽으로 키를 키 우며 휘어지게 만들면 좋다. 화분에 몇 개체가 심겨 있는지, 상태는 어떤지 확인한 후 따로 기울어지게 할 개체 하나를 분리한다. 목질화가 안 된, 최대한 여리고 가는 줄기 한 개를 선택하면 수형 잡기가 편리하다. 적당한 화분 크기를 선택한 후 분재용 굵은 와이 어를 이용해 시작점을 화분 배수구 쪽에 걸쳐서 고정한다. 고정한 와이어를 줄기에 S자 형태로 꼬아서 모양을 잡아 주거나 기우뚱하게 자리를 잡아 분갈이한다. 이때 와이어는 3㎜ 이상 굵은 제품을 선택한다. 분갈이와 고정을 마쳤 다면 햇빛이 드는 창가 등에 두고 지켜보면서 관리하면 색다른 느낌의 홍콩야자를 만날 수 있다. 친절한 식물상담소 홍콩야자를 일자로 곧은 형태가 아닌 새로운 수형으로 키우고 싶다.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듯 한 수형을 지닌 홍콩야자를 보고 매력에 빠졌다. 곧은 수형이 아닌 기울어진 형태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Q A 79www.sanrimji.com
글 서정민 중앙SUNDAY 기자 사진 호림박물관 제공 「미묘지색微妙之色_ 고려백자와 조선청자」 7월 31일까지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특별전 「미묘지색 微妙之色_고려백자와 조선청자」가 열린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는 그간 도자사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 했던 고려시대 백자와 조선시대 청자를 조명하는 자리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는 우리 문화사를 대표하는 이름인데 고려시대에도 백자가 존재했고, 조선시대에도 청자가 존재 했다니 새롭다. 전시는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로 나눠 각각 펼쳐지는데 각 각 ‘고려백자(高麗白磁), 열망의 빛깔’, ‘조선청자(朝鮮靑磁), 상징의 빛깔’이라는 소주제를 갖고 있다. 이는 고려와 조선 을 대표하는 도자의 이면에 존재했던 또 다른 빛깔이 어떤 의미를 갖고 제작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선 알아야 할 정보는 도자의 역사가 토기에서 청자로, 그 리고 백자로 이어졌음이다. 이는 흙과 고온 번조(불에 구워 만드는 과정) 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주변의 흙을 구워 그릇 을 만들던 사람들은 점점 더 단단하고 가벼운 그릇을 만들 86 2026.04 vol.723 + 전시회 나들이산림문화 고 싶어졌고, 이 욕망을 실현해 줄 알맞은 흙을 찾았다. 또 높은 온도에서 구울수록 그릇이 더 가볍고 단단해짐을 알게 된 사람들은 실험을 거듭하며 번조 기술을 발전시켰다. 때문에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는 사용하는 흙과 굽는 온도에 서 뚜렷한 차이가 난다. 청자를 빚는 흙은 철분이 약간 포함 된 점토다. 이 철분이 유약과 반응해 특유의 푸른빛을 만들 어 낸다. 반면 백자는 철분이 거의 없는 매우 순수한 백토(고 령토)를 사용하는데 불순물이 적어서 구우면 맑은 흰색이 된다. 굽는 온도도 다르다. 청자는 약 1,200~1,250℃에서 환 원염(산소를 제한한 상태)으로 굽는데 이때 철분이 환원되 면서 푸른색이 발현된다. 백자는 약 1,300℃에서 산화염(산 소가 충분한 상태)으로 굽고 철분의 영향이 거의 없어 순백 색을 띤다. 현재의 우리에겐 흙을 고르고 가마의 온도를 높이는 일이 뭐 그리 대수인가 싶겠지만, 답을 모르고 질문부터 새롭게 시작했던 옛날 사람들에게는 이 기술의 진보가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모두가 백자를 쓰는 시대에 굳이 청자의 빛깔을 내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고려백자(高麗白磁), 열망의 빛깔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첫 번째로 꼽히는 ‘비색(翡 色)’은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취색을 말한다. 절정기에 이른 고려청자에서 볼 수 있는 색으로, 이 오묘한 푸른빛을 우현 고유섭은 『고려청자』에서 “화려한 듯하지만, 그러나 화려한 그 속에는 여전히 따뜻하고 고요한 맛 … 청자는 고려인의 ‘파란 꽃’이다”라고 표현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월탄 박종 백자 음각연화문 과형병 백자 음각연화문 접시 87www.sanrimji.com 화 선생은 그의 시 「청자부」에서 “가을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하늘 한 조각”이라 표현했고, 전 국립중앙박 물관장 최순우 선생은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 맑은 하늘빛”이라고 비유했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고려백자는 고려 초기부터 청자 가마에 서 부수적으로 소량 제작됐다. 이후 10세기 후반~11세기 무 렵에는 용인 서리와 여주 중암리 등에서 백자 가마가 운영 되면서 본격적으로 생산됐다. 그러나 11세기 후반 이후 청 자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백자의 위상은 점차 축소됐다. 그럼에도 강진과 부안의 일부 가마에서는 고급 청자에 견줄 만한 백자가 소량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양질 백토의 확보와 안정적인 고온 번조의 기 술적인 한계로 백자의 제작 양이 청자에 비해 크게 적었다. 그럼에도 백자 생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당시 도 자장인들의 백색 자기에 대한 열망이 컸음을 보여준다. 고려백자는 조형적으로는 청자와 같지만, 태토(胎土)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고려백자는 청자에 비해 산화철 성분 이 적은 점토를 사용해 백색도가 높았다. 그러나 질이 떨어 지는 백자의 경우는 잡물이 섞여 탁한 회백색을 띠는 경우 도 있다. 또한 번조 과정에서 완전한 자화가 이루어지지 않 아 연질인 경우가 많고, 태토와 유약의 융착이 불완전해 표 면이 고르지 않거나 유약이 들뜨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런 기술적 한계 때문에 고려백자는 청자의 주변부에 머물렀지 만, 그 희소성과 과도기적인 성격으로 인해 감상과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선청자(朝鮮靑磁), 상징의 빛깔 영국 현대 도예의 아버지라 불리는 버나드 리치는 1935년 서울을 방문했을 때 달항아리 하나를 구매해 가면서 “이 항 아리를 가진 것은 마치 행복을 가득 품은 것 같다”며 조선백 자의 색을 “세계에서 가장 고요한 흰색”이라고 했다. 리치의 항아리는 지금 런던 영국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조선백자의 색은 단순한 ‘흰색’이 아니라 미묘하고 절제된 아 름다움으로 다양하게 표현돼 왔다. ‘달빛 같은 흰빛’ ‘첫눈처 백자 음각당초문 주자와 승반 청자 호 88 2026.04 vol.723 럼 맑은 색’ ‘서리 내린 듯한 빛’ ‘구름처럼 담백한 흰색’ ‘청정 한 색’ ‘무욕(無慾)의 빛’ ‘군자의 색’ ‘검박(儉朴)의 미’ 등이다. 이 시대에 청자는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을까. 15세기는 분청 사기·백자·청자·흑자 등 다양한 자기가 함께 만들어진 시기 다. 그러나 1460년대 경기도 광주에 왕실 전용 가마인 관요 가 설치되면서 이후 백자가 조선을 대표하는 그릇이 됐다. 관요에서는 17세기 후반 무렵까지 백자와 함께 소량의 청자 를 생산했는데 이 시기의 청자는 고려 말 상감청자를 계승 한 분청사기와 달리, 밝은 태토 위에 청자 유약을 입힌 그릇 으로 백태청자(白胎靑磁) 또는 백태청유자(白胎靑釉磁)로 불린다. 이는 고려 상감청자를 계승한 분청사기와는 다른 계통으로, 백자와 동일한 조형 위에 청색 유약을 입힌 것이 특징이다. 문헌에 따르면 조선 왕실에서는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기명 이 엄격히 구분됐다. 『경국대전주해』(1554년)에는 “어선(御 膳)에는 백자, 동궁(東宮)에는 청자, 예빈(禮賓)에는 채문기 (彩文器)를 사용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즉, 왕의 반찬 그릇 은 백자기를 쓰고, 동궁은 청자를 쓰며, 손님 접대용으로는 무늬 있는 백자류를 사용했다. 동궁에서 청자가 사용된 이 유는 유교적 음양오행 사상과 연관이 있는데 세자는 새벽과 동쪽, 청색을 상징하는 존재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조선 중반기까지만 만들어진 청자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양 이 극히 드물고, 당시에도 소량만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 다. 때문에 호림박물관 학예사들은 이번 전시에서 조선시대 에 만들어진 청자를 ‘단순한 유색의 차이를 넘어, 조선 왕조 의 정치적 상징과 사상이 구현된 도자기’로 풀어냈다. 청자 상감화당초문 자라병 청자 발 89www.sanrimji.com